SEOUL NATIONAL UNIVERSITY
검색창 닫기
하계 해외자원활동(캄보디아, 2016.08.16.~2016.08.24. ) 후기
  • 작성자자유전공학부
  • 날짜2016-11-11 17:48:12
  • 조회수1525
                                                    글로만 보던 세상, 그 안으로 들어가다.


                                                                                                                                                            15 윤주리


고등학교 2학년, 컴패션 번역 메이트를 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컴패션 번역메이트는 저개발국의 아이들이 한국의 후원자에게 쓴 영어 편지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봉사활동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일상에 대해, 후원자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은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상상해보았었다. 편지는 대부분 자신이 잘 지내고 있고, 지금 살고 있는 환경에 너무만족하며 항상 감사하다는 말로 가득 차있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국가의 환경이 궁금해서 찾아보면,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숫자로 표현되어 있으며 굉장히 일반적인 지식들뿐이다. ‘GDP가 몇이고, 경제규모가 어느 정도이다. 인구는 몇 명이고, 수도 에 사람들이 많이 산다.’와 같은 걸 알 수 있다. 물론 소득수준과 행복도는 반드시 비례한다고 할 수 없겠지만, 아이들의 말에서 나오는 행복한 삶에 대한 이야기와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수치적인 경제상황과 그 국가의 열악한 기반시설 속 생활양식은 양립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항상 이 ‘글속에서만 확인하던 세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렇게, 자유전공학부 가온봉사단에 참여해 캄보디아로 떠나게 되었다.

우리의 활동은 5월 말, ‘주제탐구세미나4-국제개발협력’ 기말프로젝트부터 시작되었다. 여름방학에 캄보디아에 가서 우리가 어떤 것을 실현할 것인지 준비해오는 것이 과제였다. 캄보디아의, 그 중에서도 초암 크산(Choam Ksant)지역에서, 그곳에 있는 ‘오춘(O’chunnh)초등학교에 무엇을 해주면 가장 그곳 학생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까 각 팀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수업이 끝난 후, 실제로 선정된 프로젝트는 화장실 짓기 및 화장실 사용과 위생교육, 예체능교육, 태양광판 설치, 노트북설치및 컴퓨터 교육 이렇게 4가지였고, 나는 화장실 팀과 함께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는 캄보디아는 건기와 우기가 나뉘어져 있어 강수량이 불규칙하고, 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곳이었기에 우리는 ‘자연발효식 화장실’을 채택하였다. 이는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세식 화장실과 다르게 물을 사용하지 않고, 분뇨가 알아서 발효된다. 정화조를 갈아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교통이 불편한 오춘초등학교에도적합한, 가장 지속가능한 모델이었다. 사전에 현지 공무원에게 우리의 화장실 방식에 대해 알려주었고, 7월 한 달 동안 우리는 아이들이 새로운 형태의 화장실을 어떻게 하면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이들이 처음 써본 화장실 형태일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가르쳐줄지, 선생님들에게는 어떻게 교육을 시키시라고 부탁드릴지, 구체적인 화장실 디자인은 어떻게 할지 준비해나갔다. 그런데 캄보디아에 가기 일주일 전, 현지 공무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의 화장실 디자인이 기존에 캄보디아에서 쓰는 방식과 너무다르고,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으며 현지 인부들이 처음 보는 도안이라 건축을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이걸 이제 와서 말하다니!”, 화도 났고 지금까지 한 일이 아깝고 여러가지 감정이 스쳤지만, 일단은 현지에서 제안한 디자인으로 시공을 부탁하고 우리는 가기 전까지 남은 일주일동안 캄보디아에서의 3일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고민했다.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나보니 금세 출국 날짜가 되었다.

캄보디아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첫째 날은 신발끈을 이용한 팔찌 만들기, 노트북 교육과 더불어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활동들을 진행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었고, 함께 활동을 하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딱 오전 수업까지였다. 점심식사 후 오후반아이들이 왔을 때부터는 활동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일단 우리가 한 활동을 오전에 다 해버렸고, 오후 시간이 오전보다 더 길었다. 원래 우리팀의 계획대로라면 화장실에서 계속 아이들에게 사용 교육을 해주기로 했었지만, 프로젝트가 무산된 후 급하게 일주일 간 준비한 프로그램들로 진행을 하다 보니 주먹구구식이 되어버렸다. 시간은 안가고, 활동에는 체계가 없고 내가 아이들에게 특별히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데 아이들은나를 너무 좋아해주니 오히려 자괴감이 심하게 들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던지, 우리팀은 그날 밤 긴급회의에 들어가 다음날 일정을 다시 짰다. 오전, 오후반을 명확하게 나누고 아이들을 통제함에 있어서도 우리끼리 규칙을 확실하게 했다. 아쉬움 가득한 첫째 날 밤이 그렇게 저물었다.

둘째 날에는 미래의 나에게 편지쓰기, 위생교육, 노트북 활용 교육 활동 등을 진행했다. 그 전날 밤 절치부심하고 준비했기에, 우리는 어제보다 뿌듯한 시간을 보냈으면했다. 그렇지만 또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다. 너무 어린 아이들도 있고, 캄보디아의 문자인 크메르어가 워낙에 어렵다보니 아직 글을 쓸 줄 모르는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편지’를 써본 적이 없어서 아예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르겠으면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적어 달라 했는데, 이 질문에 아이들은더 당황한 듯 했다. 아이들 몇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일단 아이들 주변에 접할 수 있는 직업 자체가 굉장히 적었다. 부모나 마을에 있는 어른들의 직업; 선생님. 군인, 오토바이 수리공 정도가 아이들이 아는 직업의 전부였다. 게다가 사실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나도 “너는 커서 뭐하고 싶니?”라는 질문에 정말 모르겠어서 곤란해 했었는데, 아이들도 아마 그때의 나와 같은 감정이었을 것 같다. 편지를 쓰는 시간에 멀뚱멀뚱 우리를 바라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더 꼭 맞는활동을 준비해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착잡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었다.

한편, 위생교육과 노트북 교육을 진행하면서도 내가 얼마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이곳에 왔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간단한 크메르어 표현 정도만 배웠지, 아이들에게 어떤 수업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가 영어로 한 말을 통역사분께서 크메르어로 아이들에게 전달하셨고, 결국에 우리가 준비한 교육 내용이 아니라 통역사로 와주신 분이 거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언어는 정말 기본 중에 기본인데,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통역사분만 믿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정말 많이 들었다. 언어와 관련해서는 사실 선생님들에게 가장 죄송했다. 학교의 선생님들께서 영어를 하지 못하셨는데, 우리를 도와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미안해 하셨다. 그렇지만 사실 죄송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였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으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의 10%도 전달이 안되는것 같았다. 막연하게 “손짓과 표정으로 하면 다 알아 들을거야.” 하면서 그냥 보내버렸던한국에서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였다.

둘째 날 한 일 중엔 아이들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통역사분과 함께, 아이들 몇 명에게 집에 화장실이 있는지, 전기나 물이 들어오는지,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집은 학교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했다. 모두 한국에 있을 때우리가 궁금해 했던 이야기였다. 가온봉사단에서 작년 겨울에도 오춘초등학교에 왔었는데, 그때 갔다 온 학생들 말로는 학교 근처에 마을이라 할 게 없는데, 도대체 애들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었다. 아이들의 집에서의 생활은 당연히 알지 못했다. 이번 겨울에도 이곳에 가온봉사단이 다시 방문할 예정이라고 해서, 그렇게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가고 싶었다. 집은 학교로부터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아이들은 전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근처 마을에 있는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오는 것은아니었다. 학교에 등록금을 내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매점에서 이것저것 사먹는 일이 많았는데 그 돈을 집에서 감당할 수 없으면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식수는 생수병을 사서 마시거나, 우물물을 퍼서 침전물을 가라앉힌 뒤 먹는다고 했다. 아이들의 집에 개별 화장실은 없었으며, 대부분 집근처 숲에 가서 해결하거나 구덩이를 화장실로 쓰다가 다 차면 묻고 다른 구덩이를 찾는 식이었다. 집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안일을 하느라 집에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의 직업을 질문했을 때 나를 유난히 잘 따르던 여자아이의 답변이 특히나 잊히지 않는다. 아이의 어머니가 프놈펜에 있는 공장에서 일을 하시며 일 년에 단 하루만 가족들에게 오신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서로 보고 싶고 애틋한 마음이 클까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의 아이들의 밝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컴패션 편지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구나. 하고 안심하고 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이곳 마을 주민들에게 생계문제는해결되지 않은 문제였다.

셋째 날은 운동회였다. 내가 초등학교 때 운동회 했던 종목들과 비슷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꼬리물고 달리기>를 할 때 마음이 급해서 손을 놓쳤어도 계속 달려가는 모습, <색깔 판 뒤집기>를 할 때 시간이 다 끝나도 아쉬운 마음에 계속 판을 뒤집으려고 하는 모습, 자신의 차례가 되기 전에 앞에서 하는 친구들의 경기를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예뻤고 영락없이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우리도 함께 뛰어다니면서 몸으로 하는 놀이이다보니 체력적으로는 정말 힘들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했던 3일 동안 답답했던 체증이 좀 해소되는 듯 했다. 운동회가끝나고, 첫째 날 아이들이 썼던 편지들을 타임캡슐에 담아 땅에 묻어두고 왔다. 아이들의기억 속에도 우리들이 조금은 남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준비한 활동이었는데, 내게 남은 좋은 추억만큼,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기억이었으면 했다.

마지막 날에는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왔다. 우리가 설치해준 노트북을 선생님들이 배우셔서 음악을 틀어주셨고, 아이들과 함께 춤을 췄다. 모두들 아쉬운 마음을 숨긴 채 뒤돌아섰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3일 동안 왁자지껄했던 분위기가 한 번에 가라앉았을 텐데, 아이들에게 우리가 괜히 상처만 주고 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우리의 활동이 마무리 되었다. 활동 자체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자면,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우리의 화장실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이후로팀원들의 사기는 떨어졌었고, 처음에 캄보디아에 가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일을 하고 오자’라는 방향을 잃었던 것 같다.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면 서로에게 더 남는것이 많았을텐데 하는 때늦은 후회도 있다. 그래도 나의 개인적인 목표, ‘글로만 보던 세상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오자’는 달성했으며, 이 경험을 통해 국제개발협력에 있어서 문화, 소통, 동등한 존중의 세 가지 가치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첫 번째로, 기술 자체보다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먼저 고려해야한다. 지금까지 공학을 배우면서 좋은 기술은 결국 사람들이 알아볼 것이기에, 기술개발에 있어서 문화는 별로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캄보디아 공무원들이 우리의 화장실 모델을 거부한 이유를 들었을 때 화가 먼저 났던 것 같다. 하지만 직접 캄보디아에서확인을 해보니 그들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우리의 ‘자연발효식 화장실’은 용변 후 톱밥을 그 위에 뿌려주어야 해 사람들이 초기에는 불편하고 어색하다고느낄 수 있는 모델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편하다고 느낄 유니세프가 지어준 수세식 화장실마저도 아이들은 불편하다고, 숲에서 볼일을 본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양식을비합리적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사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원래 편리한 것이 더 맞는 것이다. 저개발국에 지원을 할 때, 단순히 어떤 장치를 그곳에 ‘얹어주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어떻게 녹아들어갈지, 그리고 그들의문화권에 맞는, 우리가 떠난 후에도 지속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져가는 것이중요함을 느꼈다.

두 번째는 소통의 중요성이다. 우리가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그곳에 의견을 전달하는 건 모두 현지 공무원 한 명을 통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실 공사를 해주는 인부들과 학교 담당자와 마찰이 있을 때 그들을 설득하려해도, 직접 연락을 취할 수 있는창구가 없었다. 오춘초등학교 근처의 건물들을 살펴보았을 때, 우리의 화장실 모델을 짓지 못할 건축적인 어려움은 없어보였고, 우리의 프로젝트가 실현 가능해 보였지만 일주일 전의 통보로 좌절 되었고 설득할 기회가 충분치 않았기에 안타까웠다. 또한 아이들과언어가 통하지 않아 느꼈던 불편도 나의 상상 이상이었다. 만약에 소통이 가능했다면 첫째 날 아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서 남은 시간 동안 더 좋은 활동을 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이 경험을 통해, 현지와의 소통체계를 확실하게 하고, 현지에서의 언어장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사전 고민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로 이번 경험을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배움은, 아이들과 나를 동등하게 보는 태도의 내면화였다. 가온봉사단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 “우와, 얘네도 ~이런거하네?”였다. 그런데 우리가 신기하게 바라본 행동들은, 생수병으로 물을 마시는 것, 몇몇아이들이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 공기놀이 같이 한국과 비슷한 놀이를 하는 것과 같은일이었다. 애초에 우리와 다르며 더 불쌍한 아이들이라고, 스스로는 부정할지 몰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캄보디아에 오기 전에 나는, 국제개발협력에 있어서 그들과우리를 동등하게 정말 ‘협력’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으면 발전에 기여할 수 없는 원조에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는 이들을 동등하게 바라본다고생각했지만 막상 캄보디아에서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생각만 하고 있었지, 내면화하지는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앞에 겪었던 문제들의 시작이 나의 태도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도와주는 사람이니까, 우리가 하는 건 뭐든 좋아할거야’라 생각한 어설픈 접근이더 많은 이해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막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훗날 내가 국제개발협력을 담당하는 기구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글로 보던 두 동떨어진 세계만 알고 있었다면 그저 그들이 더 좋은걸, 더 발전된 상태를 알지 못해서행복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번 캄보디아 봉사활동은, 그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편지 속 세상처럼 숫자와 지표상의 세상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가르쳐준 활동이었다.
 
목록

수정요청

현재 페이지에 대한 의견이나 수정요청을 관리자에게 보내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빈 칸에 내용을 간단히 작성해주세요.

닫기